건강 백과
가장 소중한 우리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봄빛 건강백과의 제안
담배와 이별하는 법
작성일 : 2005-01-04
나는 5년 전에 담배를 끊었다. 첫 번째 금연 시도였는데 다행히 성공했다.
´독하다´라는, 비난인지 시샘인지 알 수 없는 반응부터 ´곧 다시 피우게
될 것´이라는 저주, ´대단하다´는 찬사까지, 주변의 흡연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감정적 반응에서 벗어나 진지한 태도로 어떤 방식으로
금연에 성공했느냐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잠깐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한다. 많은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면서도 그것을 증오하고
적대시한다. 그러니 담배를 끊을 때에는 오죽하랴. 아끼던 라이터,
재떨이까지 쓰레기통에 던지며 적개심을 불태운다. 그러나 그건 너무 매정한
방식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했던 담배와 그렇게 박절하게 이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담배는 오랫동안 우리의 벗이었고 고통과 기쁨의 순간을 함께한
인생의 동지였다. 그런 담배를 벌레 보듯, 난 네가 지긋지긋해 외치며
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담배를 한 보루 샀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한 보루를 다 피우면
담배를 끊겠다고. 한 보루면 열 갑, 한 갑에는 스무 개비가 들었으니 모두
200개비였다. 나는 편안한 자세로 아름다운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 담배에 얽힌 그 모든 추억들을 되새겼다.
담배와 함께한 인생의 고비들을 반추했다. 힘든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다.
한 개비, 한 개비 줄어들 때마다 이별의 슬픔은 커졌다. 그러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담배와의 이별이, 도저히 가능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그 순간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브라운 운동을 하며 퍼져나가는
흰 연기를 향해 나는 속삭인다. 담배여, 그동안 너와 함께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가 다하였다. 나는 너 없는 인생을 살아볼 작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관계는 최근 들어 조금은 불평등하였다. 너는 나를 지배하고
내 위에 군림하지만 나는 저항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것이 너의 본성임을
알고 그래서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하겠다.
내 사랑하는 폭군이여, 안녕! 결국 마지막 갑, 최후의 한 개비가 남았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하늘을 내다보며 생애 마지막 담배를 피웠다.
연기는 대기 속으로 흩어졌고 꽁초는 재떨이에서 허리가 꺾였다.
발리 여행 때 사온 사기 재떨이, 나는 그 재떨이를 깨끗이 비우고 따뜻한
물로 씻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담배라는 잔혹한 애인이 내게 남기고
간 이별의 정표였다. 결별과 함께 금단 증상이 시작됐다.
담배는 누구보다도 지능적인 스토커였고 매혹적 팜므파탈이었다. 담배는
그를 떠나 보내려는 사람과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학자에게는 학자의
언어로, 의사에게는 의사의 언어로, 작가에게는 작가의 언어로 유혹한다.
이런 식이다. 이봐, 담배를 끊고 나서는 한 줄도 못 쓰고 있군 그래. 설마
네 몸뚱이가 문학보다 소중하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이번 작품 끝낼
때까지만 피우라고. 응? 나는 대답한다. 건강 때문에 끊은 게 아니라니까.
너한테 휘둘리기 싫었을 뿐이야. 내가 널 휘둘렀다고? 천만에. 나는 너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창조성을 북돋웠을 뿐이야. 금단 증상은 곧 지나갔다.
그러나 의식의 차원에서 몰아낸 담배는 무의식의 차원, 즉 꿈에 나타나 가끔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것도 점점 뜸해지더니 어느 새 완전히 내 정신의
모든 영역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담배와 그에 얽힌 모든 것들에 무덤덤해졌다.
피울 만큼 피우면서 천천히, 그러나 냉정하게 담배와 결별하는 이 금연법을,
나는 ´애도의 금연법´이라 부른다. 자, 담배여,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
출처 : 김영하 소설가
´독하다´라는, 비난인지 시샘인지 알 수 없는 반응부터 ´곧 다시 피우게
될 것´이라는 저주, ´대단하다´는 찬사까지, 주변의 흡연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감정적 반응에서 벗어나 진지한 태도로 어떤 방식으로
금연에 성공했느냐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잠깐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한다. 많은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면서도 그것을 증오하고
적대시한다. 그러니 담배를 끊을 때에는 오죽하랴. 아끼던 라이터,
재떨이까지 쓰레기통에 던지며 적개심을 불태운다. 그러나 그건 너무 매정한
방식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사랑했던 담배와 그렇게 박절하게 이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담배는 오랫동안 우리의 벗이었고 고통과 기쁨의 순간을 함께한
인생의 동지였다. 그런 담배를 벌레 보듯, 난 네가 지긋지긋해 외치며
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담배를 한 보루 샀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한 보루를 다 피우면
담배를 끊겠다고. 한 보루면 열 갑, 한 갑에는 스무 개비가 들었으니 모두
200개비였다. 나는 편안한 자세로 아름다운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 담배에 얽힌 그 모든 추억들을 되새겼다.
담배와 함께한 인생의 고비들을 반추했다. 힘든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다.
한 개비, 한 개비 줄어들 때마다 이별의 슬픔은 커졌다. 그러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담배와의 이별이, 도저히 가능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그 순간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브라운 운동을 하며 퍼져나가는
흰 연기를 향해 나는 속삭인다. 담배여, 그동안 너와 함께 즐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가 다하였다. 나는 너 없는 인생을 살아볼 작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관계는 최근 들어 조금은 불평등하였다. 너는 나를 지배하고
내 위에 군림하지만 나는 저항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것이 너의 본성임을
알고 그래서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하겠다.
내 사랑하는 폭군이여, 안녕! 결국 마지막 갑, 최후의 한 개비가 남았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하늘을 내다보며 생애 마지막 담배를 피웠다.
연기는 대기 속으로 흩어졌고 꽁초는 재떨이에서 허리가 꺾였다.
발리 여행 때 사온 사기 재떨이, 나는 그 재떨이를 깨끗이 비우고 따뜻한
물로 씻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담배라는 잔혹한 애인이 내게 남기고
간 이별의 정표였다. 결별과 함께 금단 증상이 시작됐다.
담배는 누구보다도 지능적인 스토커였고 매혹적 팜므파탈이었다. 담배는
그를 떠나 보내려는 사람과 똑같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학자에게는 학자의
언어로, 의사에게는 의사의 언어로, 작가에게는 작가의 언어로 유혹한다.
이런 식이다. 이봐, 담배를 끊고 나서는 한 줄도 못 쓰고 있군 그래. 설마
네 몸뚱이가 문학보다 소중하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 이번 작품 끝낼
때까지만 피우라고. 응? 나는 대답한다. 건강 때문에 끊은 게 아니라니까.
너한테 휘둘리기 싫었을 뿐이야. 내가 널 휘둘렀다고? 천만에. 나는 너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창조성을 북돋웠을 뿐이야. 금단 증상은 곧 지나갔다.
그러나 의식의 차원에서 몰아낸 담배는 무의식의 차원, 즉 꿈에 나타나 가끔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것도 점점 뜸해지더니 어느 새 완전히 내 정신의
모든 영역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담배와 그에 얽힌 모든 것들에 무덤덤해졌다.
피울 만큼 피우면서 천천히, 그러나 냉정하게 담배와 결별하는 이 금연법을,
나는 ´애도의 금연법´이라 부른다. 자, 담배여,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
출처 : 김영하 소설가